대한민국임시정부

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과 초기활동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

3·1운동 이후 정부수립운동은 국내와 상해, 그리고 연해주에서 각각 추진되었다. 임시정부수립의 역사적 의의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비록 임시정부이긴 하나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공화주의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또 하나의 의의는 그 동안 고립·분산적으로 이루어져오던 국내외의 민족운동을 미흡하나마 조직적·총괄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중심체가 성립된 점이다.

2.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기활동과 내분

임정의 초기 활동으로는 연통제를 국내와 만주에 실시한 것과 외교활동을 들 수 있다. 임정의 초기 활동에는 커다란 약점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임정이 직속의 독립군을 가지지 못했고 외교를 중시한 기본적인 운동노선을 지향했다는 것이었다. 외교운동이 열악한 국제환경으로 말미암아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 임정은 방향을 잃고 내부의 정쟁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직

국내에서 1919년 3월 1일에 3·1 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민주 공화 정부를 세워야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하여 민족의 지도자 수십 명이 국제도시인 중국 상하이로 모여들어 임시 정부를 세우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지사들 중 이동영, 이시영, 조소양 등의 제의에 따라 프랑스 사람이 살고 있는 상하이 보창로에 임시 독립 사무소를 설치하고, 정부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임시 의정원(臨時議政院)을 세우는 것이 순서였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였다.

각 도의 대의원 29명이 의정원에 모여 헌법격인 임시 헌장 10개조를 초안한 뒤 심의하여 민주 공화 정부임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헌장(헌법)과 나라의 국호, 연호가 선포되어 정식으로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정부 체제를 내각 책임제로 하여 이승만이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안창호가 내무 총장이 되는 등 오늘날의 장관과 같은 총장 제도가 시행되었다. 초대 임시 의정원 의장에는 이동영이 뽑혀 임시 정부를 이끌어갔다. 원칙적으로 임시정부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 형태의 민주 공화 정부임을 분명히 밝히고, 1945년까지 27년 동안 유지되었다.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만주지역 독립운동

두만·압록강 너머의 중국 동북지방인 요령·길림·흑룡강의 3성 일대를 통칭하는 만주는 일제에 의한 민족수난기에 펼쳐진 항일독립운동의 중요 무대로 역사적 의미가 큰 지역이다. 한민족의 고지인 이 지역은 고조선 이래 고구려와 발해의 구강이기도 한 곳이다. 고려 때에는 일시 척지정책이 실시되어 두만강 너머 선춘령에 고려지경‘ 이라 각자한 국경 표지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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