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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원

일반적으로 사진술의 탄생을 1839년 8월 19일로 인정하고 있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예술장르(회화, 음악, 공예 등등)에서의 기원은? 왜 유독 사진에서만 기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다른 예술장르의 경우, 기원에 관한 문제는 거의 파악이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본질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 또는 측정가능한 최고(最古)의 유물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기원문제는 그다지 다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발명자와 발생연대가 명확하며 전세계적으로 나온 사진사(史)책에서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1839년 당시 다케르나 탈보트 또는 니엡스만이 사진술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사진술의 기원과 사진의 기원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진술이라 함은 기술적 측면으로 카메라 메카니즘과 필름, 현상기술에 사용되는 기술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며, 사진은 그러한 도구를 이용하여 사물을 재구성한 하나의 예술장르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사진의 기원을 `카메라와 필름, 인화지를 통하여 얻어내는 예술`이라는 협의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사진술의 발명과 그 기원을 동일시 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진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를 도구의 발명, 과학적 성과로만 한정하는 오류를 갖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사진의 기원을 사진술이 발명되기 이전 `사진적 시각의 기원`이라는 광의로 해석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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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측량이란?

사진상의 촬영된 피사체의 물리량을 측정하는 것이며 측정대상의 물리량은 주로 피사체의 3차원 좌표이다. 사진은 렌즈가 부착된 카메라에 의해서 촬영되고 3차원의 물체는 렌즈를 통하여 필름의 2차원평면에 투영된다. 사진의 상은 피사체로부터 반사된 광선이 렌즈중심을 직진하여 필름평면에 투영되고 영상이 맺어진다는 중심투영의 원리이다. 즉 피사체, 렌즈중심 및 필름상의 영상점이 일직선상에 있다고 하는 기하학이 유일한 조건이다. 이를 공선조건(Collinearity Condition)이라고 하고 이와 같은 투영을 중심투영(Central Projec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2차원 사진영상으로부터 3차원 좌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불가능 하므로 사진측량에서는 한쌍의 입체사진을 이용하여 2개의 광선의 교점을 찾아 피사체의 3차원 좌표를 구한다. 입체사진은 일반적으로 두 개의 다른 카메라의 위치에서 동일 피사체를 촬영함으로써 얻어진다. 사진측량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카메라의 기하특성이 정밀하게 주어져 있어야 하며 렌즈 수차가 적고 렌즈중심을 통과하는 광선이 왜곡없이 필름평면에 영상을 맺어야 한다. 그리고 렌즈초점거리가 정확하게 측정되어 있고 필름이 평면으로 유지되어 있으며 광축과 필름이 직교해야 한다. 또한 광축의 필름면상에서의 결상위치(주점이라고 한다.)가 정확히 측정되어 있어야 측량용 카메라 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상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에는 카메라의 정확한 위치와 촬영방향이 정확히 구해져 있어 그 위치나 방향을 측정할 수 있으나 항공사진과 같이 공중에서 촬영할 때에는 위치와 촬영방향, 기울어짐(경사)을 알 수 없으므로 좌표를 알고 있는 기준점에 대공표지를 설치하고 이를 촬영하여 해석적으로 촬영위치 및 촬영방향을 구하고 있다. 이것을 표정이라 하고 여러장의 항공사진의 표정요소를 구하는 것을 항공삼각측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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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역사

기원은 카메라 옵스큐라(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라고 생각된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형은 어두운 방의 지붕·벽·문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을 투사시키거나 일식(日蝕)을 조사하는 데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몇 사람이 이동시킬 수 있는 형태로 변하여 적당한 장소에 설치해서 내부에서 경치를 관찰할 수 있게 되고, 다시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소형의 것으로 변하여 카메라에 가까운 모양으로 발전하였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하였다고도 하나, 사진사학자인 H. 게른샤임의 설명에 의하면, 영국의 R. 베이컨(1212~1294)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일식·경치를 관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원리는 베이컨보다 20년 전에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보다 늦게 이탈리아 물리학자 G. d. 포르타(1535?~1615)가 1558년 《자연의 마술 Magia naturalis》이라는 저서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그림 그리는 도구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잘 알려진 저서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가 그가 죽은 후 3세기 정도 묻혀 있었으므로 포르타를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명자로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다 . 한편, 이탈리아 물리학자 G. 카르다노가 1550년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멍에 렌즈를 끼우면 보다 밝은 상(像)을 얻는다고 저술하고 있으며, 베네치아 귀족 D. 바르발로는 1567년 조리개의 효과를 발표하였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1685년 뷔르츠부르크 수도승 J. 찬이 제시한 휴대용 카메라 옵스큐라가 훗날의 박스 카메라나 리플렉스 카메라의 원형이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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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품이란 무엇인가?

사진가들은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대상으로 삼거나,외부세계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주관을 표현 하기도 한다.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자신의 가족과 이웃.친구 등 을 자신의 사진작품에 등장 시키는가 하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동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상황을 기록하거나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그 외에도 세상에 존재 하는 유.무형의 모든 것이 사진가의 관심사 이다. 사진작업의 방향은 작가 자신의 관심사나 개인적인 취향.성격.개성.정체성 과 같은 단어와 관계가 있다.그것에 따라서 작업방향이 정해 지는 것이다.사진작품은 작가의 삶과 관계된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거나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표현 할 때 설득력을 가진다.작가로서 사진작업을 하려면 자신의 작업방향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표현방법을 선택 하는 것이다. 자신 혹은 주변사람들과 관계 된 것을 사진으로 표현 한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한 사람이 낸 골딘 이다.그녀는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성적인 욕망과 그와 관계된 상황들을 일기를 쓰듯이 남겼다.그리고 로버트 프랭크나 마틴 파와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은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과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내었다.그들 외에도 사진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수 많은 사진가들 이 자기 자신 혹은 자신과 관계된 대상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세상에 존재 하는 사물이나 그 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사진을 이용하여 표현 하였다. 세상과 관계없는 자신만의 이야기 이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야기 이든 간에 완성도 높은 최종 결과물을 만들려면 인문학에 대한 학습을 통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미적인 주관을 확립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사진작품은 사진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의 산물 이다.그러므로 사진작품을 발표 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진작품은 사진가가 자신을 비롯한 세상에 존재 하는 유.무형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감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표현 한 최종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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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역사

사진은 19C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시 화가의 그림에만 익숙 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정교한 세부묘사를 보여주는 사진은 그야말로 신기한 발명품이었다. 이러한 사진이 등장하기 까지는 두가지 과학적 과정을 거쳐 서 완성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광학적 속성을 가진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e)이다. 당시 서구 예술가들에게는 좀더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법인 착시가 요구되어 졌기 때문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진을 등장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화학적 속성으로서의 은염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만들어진 생생한 장면들을 직접 따라그리지 않고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나 은염류를 사용하여 상을 고정시킴으로써 영구히 보존 할 수 있는 길을 만 들어준 것이다. 최초로 간행된 카메라 옵스큐라의 도해, 1544년.☜카메라 옵스쿠라는 카메라가 발명되 기 훨씬 이전인 BC 4C.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가 태양의 일식을 관찰하면서 암상자의 원리에 주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암상자의 원리 즉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와도 같은데 어두운 방(어두운 상자)의 한쪽 벽 가운데에 작게 뚫린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방 바깥쪽 세상에서 일어나는 장면들 예를들면 원근감, 다양한 색채, 그림자, 미세한 움직임등이 구멍의 맞은편 벽면에 거꾸로 맺 히는 것을 말한다. 이 암상자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은 흐려지고 작아 질수록 상이 선명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의 카메라 조리개 역할과 같은 것으로서 그 구멍을 가르켜 `바늘구멍`이라고 불렀다. 이와같은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에서 바늘구멍의 크기에 의해 상의 이미지가 뚜렷해지는 것에 착안하여 어떻게 하면 좀더 사실적이고도 뚜렷한 상을 얻을 수 있을까 연구하면서 초 기의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한단계 발전시켜 이탈리아 수학자였던 제롤라모 카르다노 (Gerolomo Cardano)가 렌즈를 부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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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의 필요성

사진기는 고급 기종으로 갈수록 렌즈가 평가를 받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렌즈가 좋은 사진기가 곧 고급 기종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사진기에 있어서 렌즈는 절대적 존재다. 비유한다면, 사람의 눈과 같은 존재로 렌즈란 곧 사진기의 눈이다. 그러나 사람은 눈이 없으면 볼 수 없는데 비해, 사진기는 렌즈없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데에서 사람의 눈과는 다른 미묘한 특성이 있다.ꡐ바늘구멍 사진기(pinholcamera)ꡑ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렌즈 대신 사진기 앞에 바늘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찍게 된 사진기로서, 이것으로도 상당히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선명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바늘구멍이 좁아야 하며, 구멍이 좁다 보니 노출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선명도도 렌즈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멍을 크게 하면 시간은 짧게 걸리지만, 그렇다고 렌즈를 붙인 사진기에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사진이 몽롱해져서 알아보기가 어렵다. 1558년 이탈리아의 Danielo Barbaro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렌즈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Lentil(콩이라는 의미)이라는 원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핀홀 카메라에 구멍대신 볼록렌즈를 부착 하였더니 훨씬 더 밝고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렌즈로서 볼록 렌즈를 사용하여 밝고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었으나 중앙부에 비해 주변부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 하였다. 이는 우리가 돋보기를 통해 신문과 같은 인쇄 매체를 보았을 때 중앙은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주변부가 왜곡되며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래서 여기에 빛을 분산시키는 오목렌즈를 결합 시킴으로서 이러한 결점을 보완 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의 모든 모든 렌즈의 기본 구성이 되었다. 현재 생산되 < 복합렌즈 >는 모든 렌즈는 여러장의 볼록 렌즈와 오목렌즈가 결합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렌즈를 복합 렌즈라고 한다. 어떤 렌즈가 예를 들어 9군11매로 만들어 졌다면 이는 11장의 렌즈가 9개의 군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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