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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계의 현재 상황

한국 연극계는 현재 심한 불황 속에 있다. 외환위기 때도 매진을 기록했던 ‘라이어’도 빈자리가 늘고 있으며 객석 점유율 100%를 자랑하던 연극열전의 ‘늘근 도둑 이야기’도 겨우 제작비를 건지는 수준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어지며 특정 유명 연극에만 관객이 몰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모든 연극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지난 몇 년동안 유행하던 뮤지컬의 인기도 시들해졌는지 인터파크의 티켓 예매 상황 상반기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매출이 5억 원 정도 준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전 세계를 강습한 불황도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놓인 프랑스의 경우 오히려 국민의 문화비 지출이 늘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불황은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없다.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인기 드라마의 시청률은 여전히 20%를 넘는다. 그리고 사랑받는 만큼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주역도 바로 이러한 텔레비전 드라마였지 않은가. 비단 텔레비전 드라마만이 아니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 활자로 출판되는 소설. 모두가 매체만 다를 뿐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흥행작이라고 해도 전 국민의 25%이상이 한 영화를 보는 일은 해외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며, 우리나라 밀리언셀러의 대부분이 소설책이라는 것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드라마’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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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연극사

흔히 중세를 기원 500년경게서 1500년경에 이르는 장장 1000년간에 걸친 오랜 기간을 말한다. 서기 476년 로마가 멸망되고 (15세기 르네상스 도래까지의) 교회 중심으 사회가 형성되고 난 후 무릇 예술 중애서 가장 피애를 본 것이 연극이었다. 아울러 전시대의 문화, 예술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연한 일이었고, 연극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특히 기독교 교회가 연극을 이단시 한 것은 로마 시대의 연극이 한낱 오락의 대상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 내용이나 공연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선량한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주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교회는 연극 공연을 금했으며 배우들은 도둑, 매춘부 등 사회악의 원인이 되는 무리들과 동일시하였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모방, 그리고 예술의 본능과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어진 연극 정통의 추구 의욕은 중세 초기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서니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이어져 나갔다. 박해를 받으며 지하에서 생명을 이어간 기독교인들에 못지 않게 당시의 연극인들도 기독교의 탄압 하에 거의 순교자적 입장에서 연극 행위를 계속하였다. 물론 공연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사정을 감안해 곡예, 요술 등의 형태로 그나마 연극을 이어가고자 애썼다. 특히 희랍시대부터 서민의 환영을 받아온 마임(mimes)은 여전히 당국의 눈을 피해가며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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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연극

극장 : 종래의 회화적 장치 대신 실제의 장소를 보다 신빙성 있게 연상시키는 Box set(상자갑 무대)를 고안, 의상과 소품 또한 보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가져갔으며 셰익스피어의 공연에도 역사적으로 충실한 고증을 시도하여 사실적인 효과를 창출. Henry Irving은 무대 장치에서 groove system을 철폐하고 입체적인 장치를 만들어 사실적인 효과를 크게 높였는데 그 밖에도 장면 전환시에 막을 떨어뜨려 전환의 과정을 은폐하고 새로 개발된 가스등을 응용하여 공중에 객석을 어둡게 하는 등 보다 사실적인 조명 효과를 만들어 냄. 무엇보다 어빙은 최초의 연출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극단 : 19세기에 들어서면서 Star system의 정착과 long-run system(장기 공연)의 유행. 레파토리 시스템에 의하여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편이 작품을 번갈아 가며 공연하던 종래의 패턴이 무너지고 인기 있는 한 배우를 주축으로 한 단일작품을 오랫동안 공연하게 됨. 중산층은 물론 노동자 계급인 하층민가지도 극장의 관객이 되면서, 연극의 기업적인 가능성 증대. 스타급 배우가 극장 경영의 책임자로 나서면서 Actor-manager system(배우겸 극단장제)가 도입되었다. 비정통 형식의 극 유행 : 18세기말부터 예측되었던 일이나 19세기에 들어와 드라마에 진정한 돌파구를 만든 것은 비극, 희극 같은 정통 연극형태가 아니라 비정통 형식인 정극(Melodrama)와 소극(Farce)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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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연극

사실주의는 계몽주의 이래로 새롭게 대두한 19세기말 이성과 과학의 시대 조류 아래 콩뜨의 과학적 실증주의의 방법론과 마르크스, 다윈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문학적으로 표현되어진 것이다. 연극에 있어서 이것은 에밀 졸라의 서문으로 선언되어졌다. 졸라는 이 글에서 연극은 마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실험하듯 한 인물이 특수한 환경에 처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 기록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졸라의 연극론에 영향받아 앙드레 앙트안느는 를 설립하고 새 연극의 중심지로서 사실주의 연극운동을 펴나갔다. 그는 당시 공연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입센, 스트린드베리 등의 선구적 사실주의 작품들을 공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사실주의 연극 공연 양식을 확립하였다. 한편 그의 영향을 받아 유럽 각국에서 소극장 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는데 독일에서는 오토 브람이 를 영국에서는 J.J. Grein이 를 건립하고 각기 사실주의 연극을 주도하였다. 이로써 사실주의 연극은 전 유럽에 정착되게 됐다. 사실주의 연극론의 효시는 졸라의 앞서 서문보다 한 세기나 먼저 나온 디드로의 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연극의 완벽함은 행동의 모방에 있으며 관객 스스로가 기만될 수 있도록 정확해야 한다고 했으며 인과법칙을 예술에 적용시켜 자연과 예술을 연결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연극=현실(자연)'이라는 극적 일루젼(illusion)과 과학적 결정론을 연극의 지상과제로 삼았으며 이는 곧 사실주의 연극의 본질을 이루는 논리였다. 사실주의 연극의 공연 양식은 삭스-마이닝겐 극단의 선구적인 작업에 힘입어 앙트안느와 그의 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 그는 연기자가 실생활에서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도록 하였으며 장치도 4면벽을 모두 설계하였고 실제의 물건을 무대 도구로 사용하였다. 또한 조명도 시간, 절후에 따른 실제의 광원을 모사하고자 애썼다. 그는 이러한 모든 공연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극적 일루젼을 이루도록 연출의 감독하에 전 제작 과정에서 사실주의적 공연 양식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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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관객의 직접성

연극과 관객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관계가 직접적이라는 점이다. 누구든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인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말을 미리 연습하기도 하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고 미리 해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하면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고 말이 두서없이 나온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상상과 실제는 매우 다르다. 연극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점이 다른 매체와 연극이 다른 점이다. 관객이 배우와 함께 같이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부터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관객이 연극의 직접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관객은 일종의 경쟁자 겸 동반자로서 연극의 구조를 만든다. 영화는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에 답할 수 없다. 따라서 연극에서 관객과 같은 관계가 일어나지 않는다. TV에서도 관객과 배우는 직접적인 관계를 구성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라이브 live '라는 표현을 TV에서 사용하는데 본질적으로 TV에서 라이브는 성립될 수 없다. TV에서 라이브란 어떤 상황이 그 순간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관객이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는 사람은 배제된 상태이다. 따라서 연극만이 관객을 직접적으로 같은 공간과 시간에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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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과 연극의 묘사 차이점

희곡과 연극의 묘사 차이점 중에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무대 연출이었다. 꼽추, 리차드 3세의 무대 미술가인 알렉산드르 쉬시킨은 소극장에 비해 커서 활용하기 힘든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독특하면서도 훌륭하게 활용하였다. 그와 의기투합한 연출가 한태숙도 평소의 높은 명성대로 무대를 해체하고 전복해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우선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우뤼 조원들에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경사진 무대와 그 위에 올려져있는 독특한 구조물이었다. 연극이 시작되면 서랍식 구조물들은 평면적인 무대에서 갑자기 돌출되기도 하고, 밑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또한 오른쪽에 세로로 길게 놓여 있는 구조물은 앤의 남편인 에드워드의 시체를 눕히는 장소, 런던탑에 갇힌 클래런스의 침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그리고 높게 세워진 왼쪽 벽면에도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입체적으로 기능한다. 벽은 런던탑으로도, 문과 창문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붉은 조명과 함께 구조물이 벽에서 옆으로 튀어나오면서 그 안에서 저주를 말하는 노파가 다시 구조물과 함께 사라지는 장면이 가능한 것이다. 이 벽 구조물에 기대어서 리처드는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또한 벽면의 여러 곳에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서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연극에 계속 등장하며 리처드의 내면을 표현하는 거미라는 모티브가 이로 인해 잘 표현되었다. 또한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희곡에서 눈길을 끈 거울이라는 모티브는 천장에 가느다란 실로 매달려 흔들리는 직사각형의 거울로 등장하며, 리처드 3세가 추구한 왕좌는 세 개의 다리로 균형을 잡고 그 위에 왕관이 올려져 있는 옥좌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옥좌는 불안하게 서 있어서 그의 왕위에 대한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꼽추, 리차드 3세의 무대는 앞뒤 길이 30m에 이르는 넓고 깊은 토월극장의 무대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높은 벽의 위쪽에도 배우들이 설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관객은 아래쪽의 무대와 위쪽의 무대를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다. 아래쪽의 무대 또한 연극이 시작될 때는 반밖에 안 보이다가 진행되면서 나머지 반이 드러나기 때문에 관객의 호기심과 놀라움을 이끌어내었다. 앤이 달려가는 길을 막는 부분처럼 무대의 중간은 직접적으로 단절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뒤쪽에서 왕과 쇼어부인이 같이 침대에 있는 장면처럼 중심적인 사건 전개와 이를 둘러싼 배경으로 양분된다. 이를 통해 원래 희곡에서는 장과 막으로 구분되는 장면들을 앞과 뒤에서 일어나는 상황으로 나누어서 긴 원작을 좀 더 압축적으로 진행시킨다. 이 연극의 무대는 곡선이나 불필요한 장식물들이 배제된 채 직선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리처드 3세의 사랑받지 못하는 악한 마음이나 연극의 배경인 당시 영국의 골육상쟁과 피로 이루어진 비극적인 역사를 드러낸다. 또한 간결해 보이면서도 다양한 장치로 무대 전환을 효과적으로 했다. 리처드 3세의 희곡에서는 대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만 명시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무대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는데 잘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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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대중화

극단을 보는 관점에는 경제적 측면과 예술이념적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프로페셔널한 연극 문화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서구의 경우를 보면 연극이 국가적 종교적 품을 떠난 이후 모든 극단원들이 주주 노릇을 하던 16세기 전후의 주주(shareholder)제도, 17~19세기에 극단주가 재정을 책임지고 배우를 고용하는 지역 상설 극단들이 있어왔다. 20세기 초에 들어와 비영리적 공연을 추구하면서 그 대신 동일한 예술적 이념을 추구하자는 동인제 극단이 잠시 존재했다. 우리나라에도 경제적 측면에서 극단주가 꽤 수지를 맞췄던 1930년대의 동양극장 같은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나 음반 같은 대량 복제 예술이나 미술, 문학 같은 개인적 예술이 아닌 수공업적이며 집단적인 공연 예술인 연극은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과 같은 대량 소비사회 영상 미디어 정보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지탱하기 힘들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든 극단제도는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제작자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는 뮤지컬 등 상업연극류, 혹은 정부나 기업이 확실히 보조해주는 극단의 경우가 아닌 어떤 극단제도도 경제적으로 연극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외양으로나마 극단제도가 존속해간다면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매우 힘든 경우지만 단원들이 이념적으로 똘똘 뭉친 경우, 극단 대표나 연출, 특히 연기자들이 대책 없이 경제적으로 손해보거나 착취당하는 경우, 경제적 호황을 틈타 이도 저도 아닌 매너리즘에 빠진 연극이나 엉터리 상업극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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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탄생

문학을 포함한 모든 서양의 문화는 고대 그리스 없이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 문화는 오늘날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서구 문화의 모체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독일 문학은 고대 그리스 문학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발전해 왔다. 그리스의 연극 문화는 주신인 디오니소스와 더불어 탄생했다. 술의 정기와 취기를 주관하는 디오니소스는 모든 인간의 가슴에 도사리고 있는 근심. 걱정을 추방하기 위해 가장 평화적인 방법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생활에서 최대의 적인 근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는 주신이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가장 열렬히 찬미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 수확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포도 재배는 포도주를 양조하기 위함이었다. 포도주는 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디오니소스 주신의 선물이었다. 따라서 포도와 포도넝쿨. 포도나무 등 포도와 관련되는 모두는 디오니소스신을 상징했다. 포도 따기는 그들에게 즐거운 동시에 매우 위엄 있는 행사로서 특히 풍작을 맞으면 디오니소스의 자비에 감사하는 축제를 연일 즐겼다. 특히 포도 재배자들은 그들을 보호해 주는 디오니소스신을 가장 찬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디오니소스신의 제단을 포도로 장식하고 숫염소를 제물로 바쳤다. 사람들은 디오니소스와 염소가 모순적인 이중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디오니소스가 성스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는 염소를 디오니소스에게 제물로 바침으로써 디오니소스신을 가장 명예롭게 찬양했는가 하면, 반대로 염소는 포도밭의 나무를 갉아 먹거나 해치기 때문에 디오니소스가 적대시하는 염소를 잡아 제단에 올리는 것은 디오니소스의 성역인 포도나무를 보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디오니소스의 속성을 얻어 광란적인 노래와 춤으로 축제의 절정을 이루면서 제단 주위를 돌았다. 이 때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노래에다 매년 새로운 노래를 첨가해서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광란의 상태로 거리낌없이 축제를 즐기기 위하여 가장을 하고, 디오니소스와 관련되는 염소의 머리를 탈로 뒤집어썼다. 머리는 염소 모양을 하고 몸뚱이는 사람 모습을 한 축제의 참여자들은 음탕한 목양신 Pan: Faun 혹은 숲의 신 Satyr으로 가장하여 디오니소스의 종자신 모습으로 축제를 즐겼다. 탈을 쓴 남자들은 취기에 발기한 남근을 내보인채 춤을 추는 것이 관례였다. 지방에 따라서는 축제가 시작될 때에 다산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상징하기 위해 조각한 큰 남근을 들고 나오기도 함으로써 남근 숭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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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연극의 정의

교육연극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극교육’과의 구분이 필요하다. 연극교육은 연극 자체를 교육하려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고, 교육연극은 연극을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연극을 교육 방법론으로 도입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교육’이다. 말하자면 교육연극은 특별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고자 여러 가지 연극적 기법을 교육 활동에 도입하는 것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교육연극을 전문 극단에 의해서 공연되는 아동극, 청소년극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교육연극은 전문 극단의 아동, 청소년 연극이 공연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교육적 효율성과 비교할 때 더 적극적인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모양새도 다르다. 전문 연극은 순수 예술로서의 연극을 지향하며,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각 분야를 담당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관객은 객석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을 감상한다. 반면에 교육연극은 연극적 방법을 통한 교육 효과를 지향하며, 과정 중심의 작업이기 때문에 학생이 작업의 주체자가 되며 교사는 그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관객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참여자이다. 객석에 앉아서 관람하는 전통적인 연극감상을 지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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