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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구연동화, 동화구연)

동화는 어린이들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처음 만나는 문학이며, 문학작품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인간성의 심화를 꾀하여 참 인간으로 형성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 틀림없다. 따라서 각 연령에 맞게 적절한 동화를 제공하는 일은 아동의 교육에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아동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동화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다양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기법으로 구연동화(口演童話), 그림책 읽어주기 등의 다양한 독서지도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미취학 아동들에게 한사람의 연기자가 동화의 내용을 연기하듯 들려주는 것을 뜻하는 구연동화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그림책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이런 스토리텔링(story telling)활동은 우선 아동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켜 쉽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다양한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이제 실생활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고 대중화 되었다. 유치원, 공공도서관등에서는 정기적으로 아동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고 있으며 백화점의 문화센터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직접 배우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인터넷 동영상을 이용하여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토리텔링이란 이야기(story) + 나누기(telling)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말로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미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이다. 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 용어로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건과 사물에 대한 물리적 속성이나 사실에 대한 보도(report)가 아닌 사물이나 인물이 가져다주는 개인적 의미로서의 이야기로 지어서 말하는 것이다. 보울비(Bowlby)는 애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아들이 엄마를 좋아하는 까닭이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물리적 속성 제공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존재가 주는 접촉과 위로와 같은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인간의 발달의 핵심은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얻고 이를 토대로 유아는 하나의 인간으로 제 2의 탄생을 하게 됨을 말한다. 인간에게 있어 사건과 사물은 사실 그 자체로서가 아닌 주관적인 의미로서 받아들여지며 개인의 과거 속에 하나의 역사이자 오늘을 만드는 이야기(story)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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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 지적재산권과 카피레프트

현대 사회는 제 3의 물결이라 불리는 정보화 사회로서 정보나 지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디지털 정보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라는 매체를 통해 그러한 디지털화된 정보로의 접근이 용이해졌다. 소위 컴퓨터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고 음악 파일을 다운받으며 디지털 기술이 주는 혜택을 자유로이 누려왔다. 그런데 우리는 실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독점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고 최근 ‘소리바다’의 유료화 제소건처럼 정보의 진정한 공유를 저해하는 저작권법 체제가 카피라이트(Copyright)와 카피레프트(Copyleft)의 대립의 문제로서 대두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라는 영역의 중요성도 별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시대는 매일 컴퓨터를 이용해 음악을 듣고 뉴스를 접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영어공부를 하며 게임을 하는 등 디지털이라는 것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회이고 개개인의 디지털정보의 이용에 있어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라는 근본적인 사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일반 사적재와 달리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하다. 일반 소비재와는 달리 디지털 정보는 쉽게 복제되고 수정될 수 있으며 복제에 있어 추가적인 비용이 아주 적거나 거의 들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화된 정보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공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주의 속의 기존 저작권자들은 지적 재산권이 누리던 독점의 지위를 위협 당하게 되자 디지털시대의 지적 소유권을 더 강화하고자 하게 되었고, 이제는 인터넷정보인 컨텐츠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넷은 우리에게 다양한 혜택을 준 동시에 음란물을 퍼뜨리고 자살을 부추기며 원조 교제를 조장하는 매체로서의 폐해를 낳기도 했다. 불법으로 자료와 정보를 나누거나 훔치는 등 이러한 폐해로 인해 정보 자본주의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 저작권보호와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 네트워크 상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정보 교환에 제약을 두고 저작권자들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디지털 시대를 상업화와 상품화로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이 더욱 강화되고 컨텐츠 업계의 유료화 움직임이 점점 더 활발해 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의 공유가 사용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한, 디지털 상품화로 돈을 벌어보려는 디지털 자본주의 하에서 지적재산권에 의한 상업화와 상품화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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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레프트

카피레프트란 저작권, 카피라이트(Copyright․지적소유권)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한 폐해를 막자는 저작권 반대운동을 말한다. 또한 카피레프트(Copyleft)는 정보와 지식이 독점되는 것을 막고 사회적 공개를 통해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자본과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정보 공유를 주장, 지적재산권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의 발달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카피레프트 운동의 전개 카피레프트 운동가들은 1991년 리누즈 토발즈에 의해 개발된 컴퓨터 운영체제인 를 주목한다. 리눅스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윈도우즈와 마찬가지로 컴퓨터을 작동시키는데 필수적인 기본운영체계 (OS)인데 윈도우즈가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것과는 달리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의 복제, 수정, 배포에 제한이 없다. 카피레프트 진영은 공개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를 누군가가 변형해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을 행사한다. 카피레프트 운동가들은 OS뿐만 아니라 수요가 있는 모든 부문에 자유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특허제도와 법률적 강제가 자유 소프트웨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면 소프트웨어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저작자의 권리를 강조하던 카피라이트 시대에서 사용자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카피 레프트의 시대가 올 것인지? 리눅스의 공유와 나눔의 철학은 그동안 공급자 중심의 시장상황에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리눅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최근 1~2년 사이에 급증하며 10%에 이르렀다고 한다. 모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여 `사이버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것이 카피레프트의 이념이다. 커피레프트 정신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창작품에 대한 권리는 상업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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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의미

팝 아트는 현대 산업 사회의 특징인 대중 문화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미술 사조이다. 팝이 태동한 1950년대 후반과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바로 서구 산업 사회의 물질주의 문명이(특히 미국에 있어서)황금기를 실현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팝 아트는 미국적 물질주의 문화의 반영이며, 그 근본적 태도에 있어서 당시 물질문명 대한 낙관적 분위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와같이 팝 아트는 산업 사회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양식의 관점에서 설명되는 미술 내적인 개념인 변혁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 큐비즘이나 추상미술 등과 같은 모더니즘 운동들과는 다른 차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나 깡통 상표,마를린 몬로 따위의 광고나 대중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는 팝의 제작 원리는 다다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통해 제시한 원리-현실속의 평범한 기존 오브제를 차용하며,그것이 놓여 있던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떼어내어 제시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팝 초기에 네오 다다란 이름이 붙여졌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팝아트가 레디메이디의 원리를 이어받고 있으며, 미술 내적인 형식 논리의 추구에서 시작한 운동이 아니하고 해서 다다와 같은 안티모더니즘(anti-modernism)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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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에 대해서

팝아트는 순수미술의 반전과 대중적 통속이미지를 통합시키면서 1960년대 서구 일반사회의 환경을 미술로 수용한 예술사조이다.팝에 대한 의미를 지적해보면 팝아트라는 말은 랜덤 하우스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1960년대 초 미국에서 현저하게 전개되고 유행된 형상적 회화의 양식으로서 순수미술 분야와 특히 신문만화(COMIC STRIPS)나 광고 포스터(ADVERTISING POSTERS)와 같은 상업미술의 장르로부터 추구되어 확대된 형(FORM)과 이미지(IMAGE)들로 특정지을 수 있다."형식을 결여한 미국적 현상이라고 표현되는 대중예술인 팝아트는 맨 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팝아트는 기준 관념과 반대의 입장에 선 미학으로서 발전하였다.팝아트의 영향이 뉴욕 미술계 전반에 널리 느껴지게 되는 것은 1961년 초에 이르러서이다. 처음 5년여 동안은 어느 정도 '언더그라운드'의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팝이 화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했을 때 최초의 반응은 놀라움과 혐오, 나아가서는 거부이기조차 했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특히 뉴욕에서 심했는데 거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미국내에서 일어난 양식으로서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추상표현주의가 확고부동하게 자리잡고 있던 때였다. 팝아트의 미국에서의 반응은 미술평론가들은 무시해 버리려고 한 반면, 화상과 수집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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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역사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진정한 팝 아트 작품은 리차드 해밀튼 Richard Hamilton 의 라는 콜라쥬이다. 이 작품은 1956년 화이트 채플 화랑에서 열렸던 「이것이 내일이다」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것이다. 팝아트가 영국 대중에게 최초로 큰 반향을 일으킨 계기는 1961년의 「동시대청년작가전」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데렉 보쉬어, 앨런 존스, 피터 필립스, 기타이 등이 참가했던 전시회는 미술의 새로운 세대를 부각시켜 주었다. 미국에서의 팝 아트의 발전 과정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미국의 팝 아트는 당시 미술의 주류이던 추상표현주의 양식으로부터 놀랄 만큼 느린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해 나왔다. 그리하여 여전히 많은 미국의 팝 화가들이 추상표현주의의 대가인 윌렘 드 쿠닝을 자신들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일컫고 있다. 1955년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존스가 뉴욕 화단에 등장한 중요한 해이다. 재스퍼 존스는 195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팝 아트의 영향이 뉴욕 미술계 전반에 널리 느껴지게 되는 것은 1961년초에 이르러서이다. 팝아트는 다른 미술사조와는 달리 야릇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팝아트가 받아들여진 양상은 그 이전의 다른 모더니스트 양식들의 경우와는 판이했다. 팝아트의초기에 짧은 잠복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처음 5년여 동안은 어느 정도 ‘언더그라운드’의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팝이 화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했을 때 최초의 반응은 놀라움과 혐오, 나아가서는 거부이기조차 했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특히 뉴욕에서 심했는데, 거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미국내에서 일어난 양식으로서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추상표현주의가 확고부동하게 자리잡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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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란 무엇인가

한류는 중국과 동남아의 화교권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 문화 열기를 뜻한다. 1996년 드라마를 시작으로 중국에 수출되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가 98년부터 가요 쪽으로 확대되면서 중국 언론이 지난 해 2월 H·O·T 의 베이징 공연을 계기로 이 말을 처음 썼다. 최근 2~3년 사이 중국 뿐 아니라 대만, 홍콩,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한류 열풍은 국제관계학적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관점은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혼돈상태에서 한류 열풍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80년대 일어났던 동아시아 가치 논쟁이, 잇따른 아시아 지역의 외환 위기로 인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국은 유교 문화의 종주국이지만 근래 사회주의의 경험으로 유교문화가 중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도 앞으로 가져야 할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매우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중국 인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서구 문화의 모방은 사회 정서상 아직은 그 시기가 이르다. 서구 문화가 먼저 수용된 일본의 문화를 따르기도 망설여지고, 그 동안 문화적 모델이던 홍콩은 본토 편입 후 그런 기능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한국에서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한류 열풍이 일어나게 된 동아시아 국제사회 문화적 배경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그 동안 문화적 기지로 역할을 해오던 홍콩의 기능상실도 한류발생의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홍콩 문화가 70,80년대 한국을 점령한 일부 쿵푸 영화 외에 특별한 콘텐츠가 없다는 점도 한계이었지만 97년 중국 본토로 편입이후 홍콩의 문화는 그 영향력을 잃고 미국의 헐리우드로 그 무대를 옮긴 것도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류는 자본주의 문화가 확산되고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일본과 홍콩이 기피되고 빠져버린 공백이라는 일종의 틈새에서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과 몽골의 경우는 중국과 유사하게 볼 수 있으며 대만은 향후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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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의 원인

현재 한류 유행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한국 대중 문화가 우수하여 한류가 발생하였다고 보는 대내적인 원인론을 드는 사람도 있고 이보다는 중국 쪽의 요인에 의해서 한류가 발생했다고 보는 대외적 원인론의 의견도 있다. 물론 한국 대중 문화의 우수성도 한류 발생의 원인이 되지만 중국쪽의 현재 상황으로 인해 한류가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더 일반적이다. 중국은 1978년 대외 개방 정책 실시 이후 꾸준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서 평균적으로 전체 소득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대중 문화를 소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중산층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대중 문화를 소비 할 수 있는 중산층은 형성되었으나 경제 중심으로 살아온 중국은 이들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문화는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좀 더 문화적으로 발전된 한국 대중 문화가 이 틈을 타게 된 것이다. 한류열풍은 중국은 개방과 더불어 경제력이 좋아지면서 문화적인 소비욕구가 점점 높아졌는데 스스로 대중문화 상품을 만들어 내기에는 기반이 덜 마련됐고, 그 틈을 우리의 대중문화가 잘 파고든 것이다. 이점은 만약 중국산업이 균등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우리 문화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그 동안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던 홍콩이 그 기능을 상실하여 한국 대중문화가 이 자리를 채우게 된 면도 있다. 홍콩 문화가 7,80년대 한국에 쿵푸 영화를 유행시킨 것 말고는 달리 특별한 콘텐츠가 없었다는 한계점도 있고 97년 중국 본토로 편입한 이후 홍콩의 대중 문화는 영향력을 잃고 미국의 할리우드로 그 무대를 옮겼다. 결국 한류는 자본주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일본과 홍콩이 기피되고 빠져버린 공백을 채우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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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문화

최근 우리켵에 가장 친근하게 다가와 있는 용어 중 하나가 단연 `퓨전(Fusion)` 이라는단어를 들수 있다.퓨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지금의 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퓨전이라는 단어는 매우 많이 사용되고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F·U·S·I·O·N, 원래 퓨전의 어원은 라틴어의 `fuse`(섞다)라는 뜻으로, 이것이 영어식으로 명사화되어 `Fusion`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서 두가지 이상의 요소가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즉, 퓨전이라는 말은 융해,용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퓨전! 사실 퓨전은 매우 어려운 단어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융합, 융해, 연합, 합병, 또는 제휴`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른 문화들이 만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퓨전이다. 퓨전문화라 할 때 퓨전은 무슨뜻일까?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 즉 빨강과 노랑이 만나 분홍색을 만들 듯 그렇게 전혀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퓨전이라 한다. 이런 퓨전의 의미가 보다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요리보다 음악이 먼저 였다. 퓨전 뮤직(fusion music)이란 재즈, 록,포퓰러 등의 스타일이 혼합, 융화된 1970년대의 백인 재즈 음악가들이 시작한 새로운 감각의 무드 뮤지컬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퓨전은 퓨전재즈를 의미하지만, 문학 예술 음악 요리 등에서 장르의 구분없이 우리의 문화속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영화배우이면서 가수로 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이정현을 보면 알수있다 이정현은 강렬한 테크노풍의 곡에 동양적인 의상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연예인중의 하나이다. 퓨전 요리(fusion food)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적 없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문화와 문화가 만날 때마다 새로운 퓨전 요리들이 생겨났지만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퓨전 요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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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용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포스트`라는 접두어와 `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서로 결합되어 나타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접두어 `포스트`의 의미를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이제까지 많은 이론가들은 접두어 포스트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는데 필요한 열쇠는 바로 이 `포스트`라는 접두어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두고 이론가들 사이에는 의미상으로 많은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송두율(1990)은 사상사의 맥락에서 니체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뜻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post`를 `탈`이라는 뜻을 사용하여 `탈 현대`라는 번역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탈`의 의미는 우리말에서 `탈화`나 `탈피`의 어감과 비슷하다는 입장이다. 서규환(1990) 역시 `post`의 뜻을 `탈`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비해 탈 현대보다는 탈 근대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낙청(1985)은 오늘날의 현대를 탈 현대라고 할 때,`현재에 이미 끝난 `현대`란 아무래도 어폐가 있다`는 이유로 탈 근대 개념을 택한다. 그리고 그는 `post`의 의미를 `탈`이라기 보다는 `모더니즘 이후(후기)`,그러니까 기존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데, 이는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독자성이나 새로움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두 가지의 큰 흐름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post`라는 말이 `후기`라는 의미로 쓰였을 때는 모더니즘과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는 것 같고 `탈`이라 했을 때는 단절이나 비판적 극복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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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에서 60년대까지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과 삶의 재통합을 바라면서 고급 예술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가 60년대의 미국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미술을 전복시키는 자율적 예술로 간주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당시 대중문학의 복합적인 형태를 찬양하던 1960년대 「대중주의적」경향은 반 문화운동의 맥락에서 현대 대중문화를 비판하고 과거 미국전통을 포기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까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팝아트, 대항문(Counter Culture), 특이주의(Adhocism)로 특징 지워진다. 그리고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고급모더니즘의 상상적 추상보다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 같은 연속적 아방가르드운동의 상상적 추상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팝 아트는 특히 영국의 지식인들과예술가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미국의 대중문화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선형적인 기호로서 받아들였다. 이들은 새로운 대중매체인 T.V, 영화, 광고, 대량생산된 기계류를 통해 믿음을 전파하고 의식을 형성했으며 인류학과 기호학의 논의를 통해 모든 문화가 기호의 연속이며 정보 교환의 형태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사회적, 도시적 리얼리티를 드라마화해서 드러낸다는데 있다. 그것은 비단 예술분야 뿐 아니라 반전운동, 마샬 맥루헌의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과대평가, 수잔손탁의 캠프(Camp)와 대항문화, 1962년의 버클리 대학의 학생 운동과 1968년 5월 파리의 학생운동등 사회의 각 분야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은 미국 내에서 정통화 되었으며,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또다른 특성은 주류를 이루었던 팝아트를 비롯한 사회운동들까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경향이 바뀌거나 몰락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모더니즘의 상업적 성공을 공격하거나, 냉소적이고 요란한 형식을 통해 모더니즘의 지위를 탈취 할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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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1) 개념 체계적인 이론이나 포괄적인 철학을 지칭하는 것은 아님. 개념이 매우 포괄적이고, 현재도 논의가 진행중이며 정형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특징을 일괄적으로 규정하 기 어려움. 20세기 후반 들어 드러나기 시작한 철학, 문학, 예술, 건축, 음악, 광고, 사진 등 사 회문화 각 분야에서 등장한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 부정, 반성의 흐름과 상황을 통칭. 그러나 일정하게 무어라 꼭 집어 말하기 힘든, 실재하는 것 같지만 단정적으로 말 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힘든 어떤 경향을 가리킴. Nel Noddings: 사상적 운동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라 지칭 즉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 내지 반발로 등장한 사회문화적 흐름 내지 분위기 2) 전개과정 1917년 Pannwitz는 『유럽문화의 위기』에서 니체의 초인을 가리키며 "post- modern" 이라는 개념 사용.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1960년 대 건축, 문학, 미술 같은 문화이론의 영역에서 시작. 철학적 논의 출발: Lyotard. 이를 철학의 영역에서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은 Lyotard. 1979에 그의 책 『포스트 모던적 조건』은 그때까지 주로 문학, 건축 및 사회학 등에서 쓰여졌던 개념을 쟁점화. 그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의 인식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 는 문제를 추적. 즉 학문적 이론들이 갖고 있는 정당화 기능에 주된 관심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서사에 대한 거부, 형이상학적 철학에 대한 거부, 그 리고 총체적 사고에 대한 거부로 기술 근대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큰 주제, 즉 이론체계인 대 서사를 구축. 이를 준거로 해서 모든 이론과 행동을 평가하고 정당화하고 인 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억압받거나 거 부함. 포스트모던 사회에서의 담론은 지금까지 대서사에 의해 억압되어 온 소서 사로 이루어진다. 즉 인간해방, 국가발전, 역사적 진보 같은 거창한 것보다 는 자기 가정, 자기 직장, 자기 지역사회 같은 지엽적이고 자기 주변적인 것에 관심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민주 대 반민주라는 큰 틀 속에서 억압되었던 여 성차별, 가부장적 가족구조,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에로 관심 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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