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학기술] 기상학을 통해 살펴본 조선 후기 근대 과학 기술 (조선시대의 기상학,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나타난 기상학, 기상학의 근대화 과정, 서양과 일본의 기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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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학기술] 기상학을 통해 살펴본 조선 후기 근대 과학 기술 (조선시대의 기상학,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나타난 기상학, 기상학의 근대화 과정, 서양과 일본의 기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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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본 과제는 여러 학우가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 제 자료가 구입자분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되시기 바랍니다.
- 목차와 미리보기를 참고하셔서 좋은 레포트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목차…………………………………………………………………………1

2. 머리말………………………………………………………………………2

3. 조선시대의 기상학…………………………………………………………3

4. 서양의 기상학………………………………………………………………5

5.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나타난 기상학…………………………………6

6. 근대 과학 기술 수용에 있어 일본의 예………………………………8

7. 기상학의 근대화 과정……………………………………………………9

8. 맺음말………………………………………………………………………10

9. 참고 문헌…………………………………………………………………10

본문내용

[조선시대 과학기술] 기상학을 통해 살펴본 조선 후기 근대 과학 기술 (조선시대의 기상학,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나타난 기상학, 기상학의 근대화 과정, 서양과 일본의 기상학)
2. 머리말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는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목할 만한 역사의 조각이다. 수백년 동안 격변 없이 흘러오던 전통적 가치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일본과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가치관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과 서양의 신 문물과 함께 들어온 근대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였으며 이는 조선 후기 사회의 혼란과 격변의 원인이 되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서로 엇갈리는 가치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고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다행히도 이 시기에는 도입되기 시작한 근대 기술의 영향으로 다양한 사료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료는 그 시기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추측하는 데 귀중한 도움이 된다.




≪ … 중 략 … ≫




3. 조선 시대의 기상학

 우리나라의 역사상 어느 한때도 기상학이 중시되지 않았던적이 없었다. 과거 신라시대의 기록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서운고 그리고 조선시대의 수표교 측우기의 발전 등에 이르기 까지 기상학은 국가에서 가장 중시했던 학문 과학기술 분야들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과거 이 땅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절대 다수가 농업에 의존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데 있어 기상학은 내일, 모래 그리고 미래의 기상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조선은 우리나라의 역대 국가들 중 대표적인 중농 국가였다. 당시 국가의 농업은 곧 국가의 국력과 직결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기상관측은 다음과 같이 크게 11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날씨 즉 천기(天氣)와 풍향(風向)은 매일 24시간 계속 관찰되었고, 관상감(觀象監) 야장(野帳)인 풍운기(風雲記)에 낮에 한 번, 밤에 5번 관측과 기록을 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기록되어있는 천기(天氣)에서 확인 할 수 있다.
① 날씨(天氣 천기): 맑음(晴 청), 흐림(陰 음), 비(雨 우), 눈(雪 설), 맑거나 흐림(或晴或陰 혹청혹음) 등으로 일반적인 날씨를 매일 6회(주간 1회, 야간 5회) 기록함.
② 풍향(風向): 풍기대(風旗臺)에 풍기(風旗)를 꽂아 바람의 방향을 북풍(坎風 감풍), 북서풍(乾風 건풍), 서풍(兌風 태풍), 남서풍(坤風 곤풍), 남풍(離風 이풍), 남동풍(巽風 손풍), 동풍(震風 진풍), 북동풍(艮風 간풍) 등 8방위(方位)로 관찰하여 매일 6회 기록함.
③ 우량(雨量): 1441년부터 측우기(測雨器)로 주척(周尺)의 푼(分, 2mm) 단위까지 기록하고 비가 오기 시작한 시각과 그친 시각도 함께 기록함. 계속해서 비가 올 때에는 주간과 야간으로 나누고, 인정(人定)과 개동(開東)에 기록함. 우량보고는 개동과 인정의 1일 2회 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1791-1793년간에는 오시(午時)에도 보고하여 1일 3회로 한 적이 있음. 비의 종류는 자세히 나누어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인 개념의 상식적인 분류가 있었음. 측우기에 의한 우량관측은 눈(雪)을 포함하지 않았음.
④ 우박(雹 박): 우박이 내린 시각과 우박의 크기를 팥, 콩, 개암, 새알(鳥卵 조란) 등으로 분류해서 기록함.
⑤ 우뢰(雷動 뇌동): 나타난 시각을 기록함(某時 雷動).
⑥ 번개(電光 전광): 나타난 시각을 기록함(某時 電光).
⑦ 안개(霧 무): 나타난 시각을 기록하고, 비 오는 날에는 보고하지 않음.
⑧ 흙비(土雨 토우): 나타난

참고문헌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 교보문고 (박성래 지음)
과학사 - 전파 과학사 (김영식, 박성래, 송상용 지음)
서구의 충격과 근대 한국 사상 -한울 아카데미 (이상익 지음)
근현대 한국사회의 과학 - 창작과 비평사 (김영식, 김근배 엮음)
일본 근대의 풍경 - 그린비 (유모토 고이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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