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내 검색

자이브의 정의

자이브란 재즈음악에 맞추어 추는 격렬한 춤을 말한다. 이 자이브는 1945년까지는 재즈 또는 스윙(Swing) 혹은 지루바 등으로 호칭되었으나 그 뜻은 넌센스, 엉터리, 야유함 등의 뜻이라고 한다.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에 가까운 루이지아나주 뉴올리안즈에서 1910년대에 발생한 재즈음악이 1930년 무렵에는 부기우기(재즈피아노의 일종) 연주법이 사용되어 이러한 음악에 맞추어 추기 시작한 새로운 댄스가 린디홉(Lindy Hop) 이란 춤이었으며, 이 린디홉에다 북미의 흑인들이 도약적인 동작과 익살맞은 제스쳐를 곁들여 춘 새로운 춤이 지루바(Jitter Bug: 일명 스윙댄스) 이다. 이 지루바는 처음 상당히 어크로바틱(acrobatic: 재주넘기)하고 격렬한 춤으로서 세계2차대전까지 전 미국에 대유행을 하였다. 이 지루바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유행한 것은 세계2차대전 중에 미국의 Gl들이 주둔지에서 많이 추어 그 지역의 사람들이 따라 추었기 때문이다. 이 지루바를 영국위 댄스강사들이 지루바의 원스텝을 샤세(투스텝, 트리플스텝)로 개량 발전시킨 것이며 이 호칭에 관한 공식 명칭을 사용한 것은 1950년에 영국위 6개 무도강사협회협의기구인 오피셜보드 오브 볼룸댄싱(약칭 O.B.B.D)에서 승인하고부터 이다. 현재의 자이브 시험요강(SYLABUS)은 영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제일 많은 무도강사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영국황실무도강사협회(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e)가 1973년 7월에 단행본을 출간하고 라틴아메리카댄스의 무도강사자격시험이 채택하고 있다. 현재 영국의 6개 무도강사협회에서는 라틴아메리카댄스의 시험요강을 대체로 영국황실무도강사협회에서 제정한 것과 라틴아메리카댄스의 대가인 영국의 Walterlaird씨가 저술한 라틴교본 중에서 그 하나를 채택하여 무도강사자격시험에 사용하고 있다.

문화예술 > 춤/무용

자이브의 탄생과 어원

사실 이번 강의를 듣기 전까지 자이브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단지 춤 종류 중에 하나라는 것만 알았던 문외한 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 직접 자이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사를 해보니 정말이지 역사가 깊고 매력적인 댄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이브란 재즈음악에 맞추어 추는 격렬한 춤을 말한다. 이 자이브는 1945년까지는 재즈 또는 스윙(Swing) 혹은 지루바 등으로 호칭되었으나 그 뜻은 넌센스, 엉터리, 야유함 등의 뜻이라고 한다. 북미의 미시시피 강 하구에 가까운 루이지아나주 뉴 올리안즈에서 1910년대에 발생한 재즈음악이 1930년 무렵에는 부기우기(재즈피아노의 일종) 연주법이 사용되어 이러한 음악에 맞추어 추기 시작한 새로운 댄스가 린디홉(Lindy Hop) 이란 춤이었으며, 이 린디 홉에다 북미의 흑인들이 도약적인 동작과 익살맞은 제스쳐를 곁들여 춘 새로운 춤이 지루바(Jitter Bug: 일명 스윙댄스) 이다. 이 지루바는 처음 상당히 어크로바틱(acrobatic: 재주넘기)하고 격렬한 춤으로서 세계2차대전까지 전 미국에 대유행을 하였다. 지루바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유행한 것은 세계2차대전 중에 미국의 Gl들이 주둔지에서 많이 추어 그 지역의 사람들이 따라 추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 춤/무용

메렝게의 개념

메렝게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춤이며 그 이웃나라 이이티의 민속춤이기도 하다. 살사와 같이 메렝게 또한 아프리칸계의 영향을 받아 Afro-Caribbean 계통의 도미니카 민속춤에서 오늘날 세계전역에서 즐겨지고 있는 음악과 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메렝게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다함께 쇠사슬에 묶인 채로 드럼소리에 맞춰 사탕수수를 베면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 수밖에 없었던 노예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 이고. 두번째는 어떤 위대한 영웅이 도미니카 공화국 내전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한 마을사람들이 승리축하파티에 그를 위해 춤추는 사람들 모두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끌면서 춤을 춘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메렝게는 도미니카 공화국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아이티에서는 유사한춤을 메링게(Meringue)라고 부른다). 이 춤의 명칭은 설탕과 흰 계란으로 만든 과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가볍고 천박한 춤의 특징과 짧고 간결한 리듬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19세기 중반까지 메렝게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매우 대중적인 춤이였으며. 현재 이 춤은 도미니카 공화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댄스행사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보급되었으며 표준 라틴아메리카 댄스 중의 하나이다. 현재 이르러서 메렝게는 음악은 Rock, Hip Hop, House, Reague 등의 다른 음악적 요소와 결합되기 시작하여 더욱 빠르고 흥겨운 음악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따라서 흔히 나이트 클럽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음악에 이러한 메렝게 동작을 자연스럽게 사용할수 있을정도로 변화되고 있다.

문화예술 > 춤/무용

탭댄스의 정의

정교하고 율동적인 발놀림과 발 구르기를 특징으로 하는 공연춤의 한 양식. 탭 댄스의 역사적 원천은 영국 북부의 전통적인 나막신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지그.릴.플링, 아프리카 춤의 율동적인 발구르기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민스토럴 쇼에서 미국 흑인들과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양식화하고 혼합해서 대중적 스타일의 춤과 풍자극을 만들어냈다. 민스트럴 연회자들 중 유명한 인물은 랠프 킬러, 다니엘 에멧이 있고 단체로는 린치 앤드 다이아몬드가 유명하다. 19세기말에 벅 앤드 윙과 소프트 슈라는 2가지의 독특한 기교가 나타났다. 벅 앤드 윙은 활발하고 빠른 춤으로 나무창을 댄 신발을 신고 추며 소프트 슈는 느긋하여 부드러운 춤으로 부드러운 창을 댄 신발을 신고 춘다. 1900년경 조지 프림로즈는 소프트 슈 춤을 유명했고 지미 도일과 할런드 딕슨은 벅 앤드 윙으로 유명했다. 1920년까지 이 두 기교의 변형된 형태가 등장했고 발 구르는소리가 더 잘들리도록 금속 징을 신발 뒷굽과 앞창에 부착했다. 발의 기교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대로 사용되었으나 발 재간에 다리 놀림이 덧붙여졌고 때때로 박수를 치거나 몸을 두드리는 동작도 가미 되었다. 당시의 무용가들로는 팻 루니, 조지 M, 코언, 포드 4형제(Four Fords), 톰 패드리올라. 빌 로빈슨 등이 있었다. 1940년 이후에는 더욱 복잡한 발 놀림이 개발되었고 발레와 현대무용의 정교한 요소들이 많이 삽입되었다. 이런 유형의 탭 댄스를 개발한 무용가들로는 프레드 어스테어, 레이 볼거, 앨리너 파웰, 폴 드레이퍼, 진 켈리 등이 있었다.

문화예술 > 춤/무용

비보이 문화의 전파

화려한 방송용 안무에서부터 나이트 댄스, 재즈댄스, 벨리댄스, 살사, 비보이댄스 까지 많은 종류의 춤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춤이 나타 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원 강습을 통해 여러 장르의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파티나 클럽에서도 춤이 절대 빠질 수가 없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주목이 되는 것은 비보이 댄스이다. 마치 서커스를 하듯이 곡예를 부리는 듯 한 현란한 몸동작을 선사하는 비보이 춤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머리를 땅에 대고 회전을 하고 물구나무를 서고 앞 뒤로 구르는 등 춤보다는 기교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런 비보이 문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에 들어서 TV광고나 여러 미디어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이렇게 주목받고 있는 비보이 댄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비보이 공연은 언어의 장벽 없이 세계인이 관람할 수 있는 비언어극이며 소리와 몸짓, 아크로바틱 등 단순한 요소를 사용하여 의미를 표현해 가는 과정에서 쉽게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이끌어 내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참여하는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기존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흥을 전달한다. 초기 B-Boy 문화는 사회로부터 관심 밖인 음지의 문화라 여겨졌다. 생소한 문화를 향유하려는 그들, 춤이 좋아 공부나 일을 포기하고 오로지 춤에만 매달리는 청소년들에, 전문 댄서를 꿈꾸며 가능성이 적은 공부를 포기하고 춤에만 열중하는 이들에게서 기성세대가 곱게 봐줄 리는 없었다. 이처럼 B-Boy 문화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황을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차츰 이런 비자유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신만의 문화를 찾는 경우가 나타나게 된다.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동은, 기성세대의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만, 그들은 진정한 자신의 문화를 이끌어 낸다. B-Boy문화가 그 예이다. 불량한 학생 춤꾼이라는 인식에서, 어엿한 직업인까지의 시각으로 보여 지고 있다.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을 벗어나, 그들만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낸 B-Boy들은 이젠 형편없는 대접이 아닌 서서히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B-Boy 경연대회 또한 마케팅의 한 종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의 문화가 인정받고 활성화된 것은 문화주의의 관점에 연관되어진다. ‘문화주의’는 인간의 행위에 중점을 두고, 행위가 구조를 결정한다는 행위 패러다임을 중요시 여기며, 결국 ‘문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모든 문화에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 정리하자면, 구조에 의해 인간의 행위가 지배되는 학교교육이나 학원교육과는 달리, B-Boy들은 그런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의 눈에 보이는 미래, 그들이 원하는 행위를 찾아 향유하게 된 것이다. B-Boy들의 문화는 기성세대의 선입관에 의해 낯선 문화, 양아치 문화 따위의 시선을 받아 왔지만, 그들의 문화는 이제 춤에 대한 편견과 ‘거리의 아이들’로 여기는 인식이 점차 사라짐으로써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 춤/무용

비보이의 기원과 발상지

비보이의 기원을 보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후반 흑인의 독무대였던 미국 뉴욕 뒷골목에 히스패닉계가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그 히스패닉은 남미 경제가 피폐해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히스패닉계가 급증한 탓이었다. 대부분 10대와 20대 젊은이였던 흑인들과 히스패닉계는 뉴욕 뒷골목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처절한 패권 다툼을 벌였는데, 그 때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된 것이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힙합이다. 힙합이란 비트가 강한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벽화, 낙서) 따위를 모두 아우르는 말인데 그 중 하나인 브레이크 댄스의 빠른 리듬에 춤을 추던 그들은 춤을 출 때만큼은 서로 총질이나 칼부림을 하지 않기로 묵계를 맺었는데 때로는 분을 삭이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상대방 구역으로 몰려가 춤으로 시위를 했는데 당연히 상대방 기를 죽이려고 온갖 기기묘묘한 동작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브레이크 댄스가 오늘날처럼 발달하게 된 계기이다. 비보이들의 경연대회에 꼭 ‘배틀(battle)’이란 말이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비보이는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 속에서 태어났다. 비보이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정신의 바탕에는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는, 폭력과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 의지가 담겨 있다. 비보이는 1970년대 초 DJ 쿨 허크(Kool Herc)가 강한 브레이크 비트를 사용하면서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 춤/무용

탱고의 어원

탱고의 어원은 ‘만지다’는 뜻의 라틴어 ‘탄게레’(Tangere)에서 비롯되었다. 탱고는 19세기 유럽의 댄스와 댄스 음악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리듬이 혼용된 복합적인 음악 산물이다. 탱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의 유기적인 결합은 19세기 아르헨티나의 복합적 문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남부 유럽의 고전적인 춤곡과 아프리칸 이주민들의 민속음악이 결합된 탱고 음악은 모체, 또는 원조로 쿠바 아프리칸 노예들의 음악 하바네라(Habanera)를 모시고 있다. 하바네라는 19세기 초 쿠바에서 유행한 2/4박자의 춤곡으로, 아바나에서 이 우아한 춤곡을 접한 아르헨티나의 선인들에 의해 19세기 중엽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건너왔다. 쿠바의 하바네라는 아르헨티아에서 더 강한 템포감과 아르헨티나 목동의 노래 가우초의 멜로디가 차용된 ‘밀롱가’(Milonga)―현재 탱고의 변형된 형식이나 댄스 홀을 지칭한다―라는 고유한 형식으로 발전한다. 1860∼70년에 즈음하여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확산된 밀롱가는 아프리칸 흑인 노예의 주술적 의식을 표방한, 독특한 싱커페이션을 가진 2/4박자의 카니발 음악 칸돔블레(Candomble)로 진화하고, 이는 탱고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음악이 되었다. 그 밖에 유럽의 폴카와 중남미의 격렬한 축제 음악 살사와 볼레로에서도 그 내용을 흡수하게 된다. 탱고 음악에 함유된 복잡하고 다양한 다문화적 배경은 탱고 음악이 오늘날 인종과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월드뮤직으로서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탱고의 산지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항구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보카 지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된 것은 1880년대이며, 1930년대까지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져, 짧은 시간에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유럽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이주민들로 가득했다.

문화예술 > 춤/무용

무용 치료의 역사적 배경

춤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제례나 의식 속에서 종교와 함께 있어 왔으며, 원시사회에서는 그들의 근본적인 달성을 위해 주술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공포, 경외, 숭배 등을 춤으로 표현했고, 집단적인 공유를 함께 했다. 치료로서 유용한 종교적 춤의 유형은 춤추는 행위자가 일으키는 황홀경(ecstasy)으로서 원시 부족에서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황홀경의 치료적 가치는 춤에 의해 유도된 황홀경의 상태에서 뭉쳐진 억눌린 감정의 격렬한 발산을 통하여 황홀상태에 들어간 무당과 관객의 동시적인 참여의 체험으로 관객의 소망과 염원에 따라 그들을 대리하여 인간의 신앙적 기원을 신에게 비는데, 무당굿이 얼마나 치료효과를 갖는가는 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즉각적인 반응으로 형성되는 굿판에서의 상호행위 속에 이루어진다. 한편, 20세기 치료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인간내부에 흐르는 영적 느낌을 신체로 나타내려 한 Mary Wigman(1889-1973)과 자연의 움직임(바람, 파도, 생명의 본능적 움직임)을 통해 내적 요인을 움직임으로 이끌어낸 Isadora Duncan(1877-1973)이다. 그 후 1930~4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정신치료의 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당시의 현대무용가와 교육자들이 정신장애자 치료에 다양한 무용치료기법을 만들어 정신과 육체를 재결합하게 도와주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스위스 출신의 Trudi Schoop는 California의 정신병원에서 무용 치료를 시작하였고, Blanche Evandms은 신경 질환에 있어서 무용 치료의 적용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하였다. 독일에서는 1926년 신경 질환에 체조를 이용한 Sieger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고, 또한 Jung이론을 무용치료에 도입한 Mary Whiehous 등이 있었다. 무용 치료의 확립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던 인물로는 1942년부터 미국 Washington의 St. Elizabeths Hospital에서 활동하였던 Marian Chace가 있다. 그녀는 무용 치료 프로그램을 확립하여 시행하였고, Freud의 정신분석학에 기초를 둔 무용 치료 이론을 정립하였다. 그녀의 논문 'The Power of Movement with Other'가 1964년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발표하면서 무용 치료 이론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후 1966년에 미국 음악 치료 협회를 설립하여 전문적인 교육 분야로 확립시키고 정기적인 학술 대회를 열고 있으며, 현재 2천 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무용치료는 서양의 심리학적 이론을 가져오되 한국인의 독특한 감성과 문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한국인의 심층심리의 원초적 리듬을 찾는데 그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예술 > 춤/무용

<